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태 타이거즈 (문단 편집) === 해태 선수 출신 감독은 성공할 수 없다? === 해태 타이거즈는 자타가 공인하는 1980~1990년대 [[KBO 리그]]의 맹주였지만, 흥미롭게도 이 팀에서 선수로 뛰었던 이들이 감독을 맡으면 희한하게도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역대 해태 선수 출신 감독은 [[서정환]], [[김성한]], [[유승안]], [[이순철]], [[한대화]], [[선동열]], [[이강철]], [[김종국(야구)|김종국]]이 있다. 이들은 선수 시절 한국시리즈 우승을 밥먹듯이 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 우승을 경험한 [[선동열]]과 [[kt wiz]] 감독 시절 우승을 경험한 [[이강철]]을 빼면 감독으로는 누구도 한국시리즈 우승의 영광을 안지 못했다. 대부분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명제를 증명한 이들이다. 해태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 감독을 맡은 사람은 1980년대 타이거즈의 주전 유격수였던 [[서정환]]이었다. 그는 해태에서 은퇴한 후 1994년까지 해태 코치를 맡았다가 1996년, 본인의 친정팀이었던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로 자리를 옮겼고, 1998년부터 2년간 감독을 맡았다. 감독 재임 기간 내내 [[삼성 라이온즈]]를 가을야구로 이끌었지만, 1998년에는 재계 라이벌 [[LG 트윈스]]에 플레이오프에서 패퇴했고, 1999년에는 한국시리즈 진출을 눈앞에 두고도 [[롯데 자이언츠]]에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믿기 어려운 역전패를 당한 후]] 잘리고 말았다. 2001년 해태로 다시 돌아왔고, 2006년부터 [[KIA 타이거즈]] 감독을 맡았다. 취임 첫 해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올랐지만 [[한화 이글스]]에 패하며 탈락했고, 이듬해인 2007년에는 구단 역사상 2번째 꼴찌의 불명예를 쓰면서 감독직에서 잘렸다. 타이거즈의 대표적 강타자 [[김성한]]은 해태의 마지막 감독이자 [[KIA 타이거즈]]의 초대 감독이었다. 그가 해태 감독으로 취임한 2001년은 구단 매각 문제로 안팎의 사정이 워낙 어수선했다고 치더라도 모기업이 [[기아자동차]]로 바뀌고 팀 이름이 KIA로 바뀐 후에는 구단에 대한 지원이 막강해졌다. 특히 2002년부터 KIA는 리그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올랐고 해태 시절에도 없었던 2년 연속 6할 승률을 기록하는 등 강팀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으나 정작 한국시리즈 무대는 밟아보지 못하고 플레이오프에서만 두 번 연속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2004 시즌 도중 프런트와 불화를 일으켰고, 결국 감독직에서 [[경질]]된다. 1990년대 타이거즈의 [[군기반장]] 역할을 했던 [[이순철]]은 [[삼성 라이온즈]] 코치로 있을 시절에는 그럭저럭 호평을 받았지만, [[LG 트윈스]] 감독으로서는 씻을 수 없는 [[흑역사]]를 경험하게 된다. 팀은 가을야구를 나가지 못했고, LG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 [[김재현(1975)|김재현]], [[류지현(야구)|유지현]]을 비극적으로 몰아내면서 LG빠들로부터 거의 매장당했다. 현재까지도 LG빠들은 [[이순철]]을 [[금지어]]로 칭하고 있다. [[OB 베어스]], [[LG 트윈스]], [[쌍방울 레이더스]] 등 여러 팀을 오갔지만 타이거즈에 소속됐던 시절이 가장 화려했던 [[한대화]]도 프로 감독으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물론 [[한대화]]의 경우 [[한화 이글스|그가 맡았던 팀]]의 [[답이 없는 한화의 수비|전력]]이 좋지 않았다 점을 감안해야 한다. 오히려 2011년에 탈꼴지를 해서 구단이 6연속 꼴지 기록을 세우는 것을 저지해서 야왕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였고, 한대화 이후 후임 감독들이 하나같이 한화의 처참한 뎁스에 개발린 채로 감독 임기를 마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불과 두 시즌만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었고, 타이거즈보다 이글스 선수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유승안]]도 1군 감독으로는 사실상 실패했다. 그나마 성공한 케이스를 꼽으라면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 [[2005년 한국시리즈|2번의]] [[2006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과 [[2010년 한국시리즈|1번의 준우승]]을 거둔 [[선동열]]을 꼽을 수 있겠지만, [[선동열]]의 성공 스토리는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로 한정할 수밖에 없다. 특히 감독 재임 초기였던 2005년과 2006년의 [[우승]]은 [[선동열]]이 스스로 이룬 성과라기보다는 전임 감독인 [[김응용]]의 유산이거나 소위 선수빨로 우승했다는 비판도 있다.[* 선동열이 취임할 당시 삼성은 이미 준우승팀이었고 그 전인 2001~2년에도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했을 정도로 전력이 매우 좋았다. 여기에 자금난을 겪던 [[현대 유니콘스]]에서 [[박진만]]과 [[심정수]]를 FA로 사들이면서 1강 취급을 받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삼성이란 팀 분위기 때문에 2009년에 가을야구를 못 보내고[* 특히 2009년의 가을야구 실패는 13년 만의 일이었으니 그 충격이 컸다.], 2010년에 SK에게 한국시리즈를 내리 스윕하고, [[류중일|후임 감독]]이 5연속 정규 시즌 우승과 4연속 통합 우승을 했기 때문에 삼성 팬덤에게 우승하고도 흑역사 취급을 당하고 있다. 어쨌든 [[선동열]]은 [[삼성 라이온즈]] 시절의 영광을 안고 고향 팀인 [[KIA 타이거즈]]에 감독으로 돌아왔지만 5위 - 8위 - 8위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두며 불명예 퇴진하게 된다. 타이거즈 감독들 중에 유이하게[* 나머지 한 명은 [[맷 윌리엄스]].]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고, 선동열의 전임 감독과 후임 감독이 우승을 했기 때문에 더더욱 비교 된다. [[선동열]]의 흑역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는데, [[선동열호|금메달을 따고도 욕을 먹는 국가대표팀]]의 감독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국대 감독으로서의 비판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9년부터는 타이거즈 사상 최고의 잠수함 투수였던 [[이강철]]이 [[kt wiz]]의 제3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됐는데, [[이강철]]의 성과에 따라 타이거즈 선수 출신 감독의 잔혹사가 끊기던가 아니면 이어지던가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강철은 비록 포스트시즌에는 한끗 차이로 못 갔지만, 취임 첫 해부터 5할 승률과 6위라는 순위로 kt wiz 역사상 최고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다만, [[한용덕]]의 사례처럼 1년 반짝일지는 아직 지켜봐야 할 일이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지각 개막한 2020 시즌 들어 초반의 부진을 딛고 중반부터 무서운 기세로 승수를 쌓아가며 결국 정규 시즌 2위로 [[KBO 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 직행에 성공했다. 2021 시즌에는 전년도 MVP [[멜 로하스 주니어]]가 일본 진출을 위해 퇴단하는 아쉬움 속에서도 [[KBO 리그/2021년/정규시즌 1위 결정전|KBO 사상 최초 정규 시즌 1위 결정전]][* 2019 시즌까지는 승률 1위 팀이 2팀 이상일 경우 팀 간 전적을 따져 순위를 가렸는데, 그해 [[SK 와이번스]]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하고도 다음 날 [[두산 베어스/2019년/10월/1일|마지막 720번째 경기]]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둔 [[두산 베어스]]가 공동 선두에 오른 후 팀 간 전적에서 앞선 두산이 한국시리즈에 직행하자 팀 간 전적으로 정규 시즌 1위를 가리는 것이 비합리적이라는 주장이 대두되어 2020 시즌부터 최종 승률 1위 팀이 2팀일 경우 이 2팀이 단판승부를 벌여 정규 시즌 1위를 가리기로 했다. 그런데 이 제도가 도입된 이후 불과 2번째 시즌에서 [[kt wiz]]와 [[삼성 라이온즈]]가 동률 1위를 기록하여 팀 간 전적에서 앞선 삼성의 홈구장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1위 결정전을 치러 kt가 이 경기를 승리하여 창단 첫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따냈다. 정규 시즌 1위 결정전이 도입되지 않았다면 kt는 2년 전 SK처럼 시즌 막판에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놓칠 뻔했다.]까지 가는 대격전 끝에 한국시리즈 최다 진출팀인 [[삼성 라이온즈]]를 물리치고 정규 시즌 1위에 올라 한국시리즈에 직행했고, 7년 연속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게 된 [[두산 베어스]]를 4전 전승으로 스윕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따라서 해태 출신 감독 중 제일 성공한 사례가 될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김종국(야구)|김종국]]이 [[KIA 타이거즈]]의 감독으로 부임되어 2022년부터 호랑이 군단을 맡게 되었다. [[해태 타이거즈]] 출신 선수 + 감독은 김성한, 서정환, 선동열 이후 4번째이며 광주 출신 타이거즈 선수로 한정하면 선동열 이후 2번째다.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2022 시즌 5위로 겨우 가을 야구에 진출했지만 경직된 경기 운영 등으로 인해 벌써부터 팬들의 비판에 직면한 상태다. 여담으로 [[김응용]] 감독을 제외하고 해태에서 코치로 생활한 감독 중에서 우승을 경험한 감독은 [[김인식]] 감독이 유일하다. [[OB 베어스|OB]] - [[두산 베어스]] 감독으로 [[1995년 한국시리즈]]와 [[2001년 한국시리즈]]를 제패했으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도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우승과 [[프리미어12]] 초대 대회 우승의 성과를 올렸다. 굳이 갖다 붙이자면 1994년부터 2년간 해태 2군 감독을 맡았던 [[김성근]]도 우승 경험이 있는 감독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김성근]]은 사실상 해태에서 이룬 성과가 딱히 없다. 해태 코치 출신 감독 중 최악의 사례는 [[김응용]] 감독 전성기 시절 수석코치 중 한 명이었던 [[유남호]] 감독이었다. 타이거즈에서만 코치로 14년을 일한 [[유남호]]는 2004 시즌 중반 김성한의 감독직 사퇴로 감독 대행을 맡은 이후 2005년 타이거즈 감독에 부임했으나 타이거즈 사상 최초의 리그 꼴찌라는 거대한 흑역사를 기록하고 한 시즌 만에 잘리게 된다. 이 외에 해태의 초대 감독이었던 [[김동엽(1938)|김동엽]] 감독은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 전 소속 팀이던 해태를 상대했지만 1무 4패로 무릎을 꿇었고, 이후에는 가을야구 문턱에도 가지 못했고, 해태와 삼성에서 감독 대행만 두 번 했던 [[조창수]] 코치 역시 감독으로서 올린 성과가 거의 없다. 심지어 해태 왕조의 군주였던 [[김응용]]도 해태와 삼성에서는 한국시리즈 통산 12회 출전, 10회 우승, 2회 준우승의 금자탑을 세우지만 2013년부터 2년간 [[한화 이글스]] 감독을 맡았다가 [[한화 이글스/2013년|흑역사만 잔뜩]] [[한화 이글스/2014년|세우고 말았다]]. 김응용 역시 한화의 처참한 뎁스를 극복하지 못했다. 한화를 리빌딩 하려고 안간힘 썼으나, 후임 감독인 김성근에 의해 그 성과조차 희미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